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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 사건

패스메이커 2026. 1. 8. 21:41

1895년 1월 5일 유대인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앵발리드 기념관(옛 파리의 상이 군인 병원)의 마당에서 불명예스럽게 군직을 박탈당한 후에 기아나 '악마의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는 독일 스파이라는 혐의로 종신 유배형에 처해졌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는 아무도 그의 죄상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프랑스 사회주의자의 창시자'인 장 조레스조차도 드레퓌스 같은 자를 총살하지 않고 유배형에 처한 것이 놀라운 일이라고 국회에서 서슴지 않고 발언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드레퓌스파(dreyfusard)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드레퓌스 사건 (프랑스사, 2005. 8. 1., 김복래, 위키미디어 커먼즈) 1898년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공개장에서 드레퓌스를 옹호한 소설가 에밀 졸라가 좌파 가운데 가장 유명했다. 졸라는 진짜 범인인 에스테라지(Esterhazy) 소령을 보호하려는 군 장성들의 책략과 군부를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부정 부패를 철저하게 공격했다. 마침내, 드레퓌스가 우여곡절 끝에 승리하여 그는 사면을 받았다. 드레퓌스는 10년간 죄 없이 고생을 했으나 그 고생은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다. 이 사건으로 양식 있는 프랑스 국민들은 우익 세력의 히스테릭한 운동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인식하게 되었고, 나가서 공화주의 세력을 대동단결하게 했다. 즉, 공화파와 사회주의 세력의 공동 전선을 형성시켰던 것이다. 그중에 가장 현저한 예가 왈덱-루소(Waldeck-Rousseau)의 급진 공화당 내각의 성립으로, 이 내각에는 밀랑(Millerand)이 사회주의자를 대표하여 가담했다.